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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해외생활

[세계여행기] 가족에게 말할 수 없었던 세계여행의 시작

 

사실 이 세계여행은 즉흥적인 것이었다.

 

필리핀 세부에서 추석 연휴기간 동안 발리를 왕복 여행으로 다녀오고자 했었으나, 회사에서 사장님과 비자 문제로 갈등이 있었고, 입사부터 약속받았던 워킹비자가 발급되지 않아 결국 회사를 관두고 필리핀을 떠나기로 결심을 했다. 저가로 사둔 발리 왕복여행권은 이로 인해 편도행이 되어버렸다. 

 

필리핀에서 회사에서 워킹비자 발급이 되지 않아 여행비자로 일을 했었다

 

필리핀 세부에서는 발리까지 직항으로 갈 수가 없었고,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를 경유해야했다. 쿠알라룸푸르는 내가 호주 워킹홀리데이 갔을 때에도 경유지로 머문 적이 있다. 그 당시 국비지원 프로그램으로 여러 명의 한국인들과 함께 호주 시드니로 워홀을 가는 도중 저렴한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6시간 정도 경유했던 것 같다. 

 

쿠알라룸프르의 제 1 공항 정중앙에는 한 그루의 큰 나무와 정글이 작은 정원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그 정원의 문만 들어가면 에어컨의 냉기 대신에 정글의 습함을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발리로 가는 환승 편을 기다리는 도중 3~4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함께 숨바꼭질을 하는 남성을 보았다. 아버지와 함께 숨바꼭질을 하는 그 아이의 얼굴이 행복해 보였다. 반면 혼자 세계를 여행하기로 한 나는 아직은 행복하지 않았다. 

 

추석이지만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해서 회사를 관두고 세계여행을 시작했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고모, 누나 모두 나를 무척이나 걱정해주고 기도해주었을거라 생각한다. 내가 정착하여 평범한 삶을 살기를 다들 원하셨을 것 같다. 그런 분들에게 전화를 해서 또 떠났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물론 내가 어떤 결정을 하든지 간에 나를 위로해주고 응원해주셨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행복해야 할 추석 연휴에 걱정거리를 안겨드리고 싶지 않아서 전화로는 발리로 휴가 갔다고 거짓말을 했다.

 

발리에는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도착을 했다. 첫날 숙소를 우봇에 잡았는데 공항에서 상당히 멀었고 밤 시간대에는 택시 외에는 우봇까지 갈 방법이 없어보였다. 택시비가 3만 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앞으로 들어갈 비용 생각에 벌써부터 돈이 아까워졌다. 게다가 택시 드라이버는 영어를 하지 못해서 제대로 숙소까지 갈 수 있을지, 아니면 미리 흥정한 비용과 다르게 돈을 달라고는 하지 않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다행히 게스트 하우스에 무사히 도착했고, 늦은 밤이었지만 체크인도 문제없었다. 

 

발리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본 석양

 

혼성 다인실 숙소에서는 한국인 여자 여행객을 만났다. 그녀는 말레이시아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고 마찬가지로 휴가차 발리에 여행을 온 것으로 보였다. 그녀와 서로의 여행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발리 다음에 내가 싱가폴을 거쳐 인도를 간다고 말하자, 그녀가 인도를 2주간 여행했을 때의 경험을 말해주었다. 처음에는 인도가 걱정되어 1명의 여자 여행객을 인터넷 카페에서 찾아 같이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그 동반자와 성격이 맞지 않아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나도 작년 추석 때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한국 여자와 대만의 타이베이 택시투어를 공유하면서 느꼈던 점이었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택시를 셰어 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성향이 다소 맞지 않아 불편하고 그다지 즐겁거나 하진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결국 그 여자는 인도 여행 2주차에는 마음이 맞지 않는 파트너와 서로 헤어져 인도 여행을 혼자 했다고 한다. 여자 혼자 여행하면 위험하다는 소리가 많은 인도를 그녀는 혼자 여행했지만, 그때가 가장 인도에서 즐거웠던 시기라고 했다. 믿기지 않는 소리였지만 곧 내가 인도에 가기 때문에 알 수 있을 거라 그녀는 말했다.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서 다시 한번 더 세계여행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그녀처럼 일을 하면서도 휴가를 내어 여행을 다닐 수 있는 환경과 나처럼 아무런 수익 없이 지출뿐인 세계여행을 선택한 것은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