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을 위해 회사를 관둔다고 했을 때, 장 사장님은 나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하셨다. 한 때 20대의 나이로 실크로드를 따라 여행을 해보셨던 사장님은 2017년 당시 필리핀 세부에서 사진 편집 외주와 앨범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셨다.
한 가장의 아버지로서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사모님과 함께 운동은 못하지만 골키퍼를 꿈꾸는 아들을 키우며, 한 때 필리핀 직원들 월급을 주지 못해 눈치를 보던 사업들을 마침내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계셨다. 사장님은 나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했지만 동시에 훗날 초라한 노인이 되지 말라고 당부하시기도 했다. 그것은 여행으로 끊길 내 경력과 앞으로 사용될 돈과 시간에 대한 충고였을지 아니면 단순히 농담이었는지 안타깝게도 되묻진 못했다.
회식 때 가끔 사장님이 꺼낸 러시아 횡단 열차를 며칠간 탔던 이야기, 중국에서 겪은 황당한 사건들은 전부 수십 년 전 이야기며, 결혼 후에는 여행 물품 사이트를 들어가서 새로 나온 상품들을 보며 여행을 꿈꾸는 것이 전부가 되어버렸다. 그 꿈은 가장이 되어버린 순간 포기해야 했던 꿈이며, 책임감에 의해 버려진 자유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사장님의 그런 세계 여행이 가끔 부러워서 나도 세계 여행을 준비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원했던 여행일지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30대의 나이로 혼자 세계여행을 간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컸다. 이 불안감은 여행지에서 겪을 두려움이 아니었다.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느낄 불안감이었다.
'다시 취업할 수 있을까?'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했던 것만으로도 한국에서 다시 일을 하는 것이 적응하기 너무 힘들었던 나였다. 세월호 사건을 보며 한국에 대해서 화가 나기도 했다. 이러한 요소들이 내가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 살고 싶게 했고, 그곳이 현실적으로 가능했던 필리핀에 와서 나는 취업을 했던 것이다. 이런 내가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세계여행을 하고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을 할 수가 있을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세계 여행자들이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대부분의 세계 여행자들은 여행을 하면서 또는 그 직후의 정보들을 인터넷에 게시했다. 현재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대부분은 여행기를 열심히 집필하며 그것으로 책을 내거나, 블로그를 쓰거나, 어딘가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거나, 여행 당시의 영상을 통해 돈을 벌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체로 안정적인 직장에서 다시 일을 하고 있진 않은 것 같았다. 아니면 그런 일반적인 삶으로 돌아왔거나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해버린 사람들은 아마도 인터넷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아서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들은 세계여행을 후회하고 있을까?
나의 세계여행은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도저히 혼자서는 이 세계여행이 값어치가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평소 손익 계산을 좋아하는 내가 세계여행을 준비하면서 느낀 점은 이 여행은 무조건 손해라는 것이었을 뿐이다. 세계여행의 경험을 위해 1년의 시간과 수천만 원의 비용을 소모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는 갔다 오지 않고서는 평가할 수가 없었다. 반면에 이미 세계여행을 다녀온 사람의 글 중에는 남들보다 1년 늦게 시작한다는 문구가 기억에 남았다. 워킹홀리데이를 2년 동안 했던 나에게 추가로 1년의 세계여행을 한다는 것은 좀 더 치명적이었을 수 있겠지만, 인생을 통틀어 보았을 때 1~3년 남들보다 뒤처진 것이 대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선 가보기로 결심했다.
지금부터 2017년부터 2018년 약 1년간의 세계여행을 여행 직후가 아닌 수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되돌아보며 과연 이것이 수 많은 비용을 들어서면서까지 갈 가치가 있었던 것인지 재평가해보고자 한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어쩌면 세계여행을 망설이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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